Chapter 68


Luna 상담이 끝난 후에도, 내 비대면 상담은 오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수많은 얼굴 모를 헌터들이 화면 너머로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았다.

모든 상담이 끝나고, 나는 오늘 기록을 정리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늘 진행된 비대면 상담의 익명과 실명 사용자의 비율.

압도적으로 전자가 많았다.

따지자면 7대3 정도?

그만큼 익명 상담을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게 생각하는 헌터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 내용들도 수치로 나타내기는 힘들지만, 다소 개인적인 것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 수준이 개인적임에 그쳤으나….

상담이 계속되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상당히 깊고 어두운 이야기 또한 많았다.

예를 들어 길드 내부에서의 암투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인 고민.

심지어 더 나아가, 던전 안에서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적이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들.

감히 얼굴을 보고 말하기에는 헌터로서 아주 어려운 이야기들.

물론 내담자의 상담 내용은 절대적으로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만에 하나 대상이 범죄자라 할지라도….

‘… 정말로 비밀이어야 하나?’

나는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일반인 상담사의 윤리 강령은 명확하다.

내담자의 비밀은 그가 타인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려는 징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지켜져야만 한다.

다만, 여러모로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어쨌든 오늘의 상담은 끝.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이것도 뭐, 나쁘지는 않은데.

역시 얼굴을 보고 직접 대화하는 것만큼의 효용은 못 뽑아내는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나 눈빛.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뚜루루루루….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협회의 팀장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담사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한결 들떠 있었다.

“오늘 시범 운영 첫날이었는데… 접속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아서 서버가 다운될 뻔했습니다.”

대한민국 헌터가 전부 접속해도 다운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뭐 그만큼 많이 신청했다는 이야기니 나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나는 미소 지으며 기분 좋게 답했다.

“별말씀을요. 제 일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그동안 기회조차 없었던 수많은 헌터분들이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의 감사를 들으며 앞으로의 시범 운영 계획에 대해 전달받았다.

일단, 일주일 정도는, 이 비대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자고 했다.

그 이후로는 뭐, 내가 직접 상황을 판단하여 대면과 비대면 상담의 시간을 조율하면 될 것 같다고.

전화를 끊고 나는 서재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 톡톡톡.

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유선우]: 세아야

답변은 즉시 도착했다.

[진세아]: 응??

[진세아]: 왜?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나는 그녀의 다급한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화연에게는 브라우니 케이크를 내일 전해주기로 약속했다.

진세아에게도 말해야 한다.

치즈케이크를 가져가라고.

내일 어차피 금강도 상담소로 오기로 했다.

나는 내일부터 시작될 비대면 상담 또한, 상담소로 ‘출근’해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온라인 상담이라 해도 집과 일터는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야 나 또한 온전히 상담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고.

계속 집에서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아까 자화연에게 전송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을 보냈다.

[유선우]: (사진)

[유선우]: 내일 점심에 시간 돼?

[진세아]: 응 당연하지!!

잘 됐다.

해태 길드의 건물은 상담소 근처라 그녀가 오기에도 용이했다.

좀 거리가 있었다면, 내가 직접 배달했을 것이다.

[유선우]: 상담소로 와. 감사의 선물이야

[진세아]: !!!!!!! 맛있겠다!

[진세아]: 근데, 저 뒤에 초코 케잌은 누구 거야?

초코…?

나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내가 보낸 사진을 다시 확대해 보았다.

“아니 이걸 어떻게 봤지….”

사진을 그냥 봤을 때는 먹음직스러운 뉴욕식 치즈케이크만 보인다.

하지만 그 뒤편, 아주 작게 계란을 보관하는 투명 플라스틱 통에, 무언가 검은 형체가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자화연을 위해 만든, 초콜릿 무스 케이크가 비치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본 거지.

나는 그 눈썰미에 혀를 내둘렀다.

거짓말할 것도 없으니.

[유선우]: 이것도 선물용으로 만들었어

[진세아]: 누구?

[유선우]: 그냥 아는 사람 ㅋㅋ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적당히 얼버무렸다.

내담자이기도 하고.

[진세아]: ㅠ 알았엉 그럼 내일 봐!!

그렇게 진세아에게도 소식을 전달하는 게 끝났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이제… 운동이나 다녀오면 될 것 같았다.

***

그날 저녁.

루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잠들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몸은 분명 피곤했다.

그러나 정신은 이상할 정도로 말똥말똥했다.

그녀는 침대 위를 뒹굴고, 또 뒹굴었다.

“끙… 끙… 으응….”

이상했다.

자려고 하는데.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자꾸 그것을 막는다.

몸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각.

온몸의 피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정도의 뜨거움이다.

결국 루나는 이불을 걷어찼다.

뭐, 그러나 소용은 없었다.

열기는 바깥이 아닌 안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것이니까.

결국 루나는 탈진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선생님의 상담실에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그 밝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향이 나는 상담실이 아니었다.

아, 좋은 향은 난다.

그러나, 그 농도가 100배 이상이다.

창밖은 짙은 밤이었고,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낮에 보았던 그 다정한 미소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천천히 루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의 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 그녀의 뺨을 타고, 목덜미를 지나 마침내 그녀의 가장 큰 수치였던 새하얀 토끼 귀에 닿았다.

“흐읏…!”

루나의 입술 사이로 뜨겁고 젖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꿈속인데도, 그 감각이 너무 생생했다.

그는 그녀의 귀를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움켜쥐었다.

루나의 연약한 귀가 손아귀 안에서 파르르 떨린다.

“아…아… 선생님….”

루나는 선생님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의 품에서는 달콤한 향이 났다.

그는 그런 그녀의 작은 등을 천천히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럽지 않다.

괜찮다.

나쁜 감정이 아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선생님의 말씀과 똑같았다.

그 목소리에 루나의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루나는 선생님의 셔츠를 벗겼다.

“선생님….”

그리고··· 상담실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 흠칫!

루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전신이.

루나가 입은 잠옷은 물기에 젖어 몸에 딱 달라붙었다.

시트가 축축하게 몸에 달라붙는 감촉이 기묘할 정도였다.

“…….”

루나는 붉어진 얼굴로 방금 전까지 꾸었던 그 생생한 꿈의 내용을 떠올렸다.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

선생님의 단단한 몸.

선생님의 달콤한 향기까지.

루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몇 초 후 터질 것 같았다.

“이… 이게… 왜….”

태어나서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평생 겪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현상이었다.

루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심지어, 지금의 심정을 말하면 약간 상쾌하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무언가를 던져버린 듯한, 그런 종류의 나른한 해방감.

솔직히 말해서.

이 현상이 무엇인지는 루나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소. 아니, 매우, 매우, 매우 야한 꿈.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까지.

이건… 수인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되는 현상.

하지만, 제국의 억압과 전이로 인해 자신의 모든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녀는,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던 그런 생리 현상.

바로.

발정기의 전조 증상이었다.

“꺄아아악!!”

루나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흡!

그러나 그녀는 순간적으로 옆방의 엘리스를 떠올리고 황급히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못 들었겠지…?’

깨어있다면 무조건 들었을 것이며.

설령 안 깨어있더라도 방금 깼을 수도 있다.

“…….”

그러나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깊게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루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아니 도둑 토끼처럼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녀는, 증거물이 묻어있는 축축한 침대 시트를 잽싸게 벗겨냈다.

그리고 세탁실을 향해 달려갔다.

빨리, 이 흔적을 없애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침대의 시트를 벗겨 세탁실로 향했다.

다 빨고, 빨리 씻자 일단.

그러나 세탁실에 들어갔을 때.

그녀의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 두우우웅….

세탁기는 이미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

루나는 세탁기 안을 확인했다.

의문의 침대 시트가 돌아가고 있었다.

– 쏴아아아….

심지어 욕실에서는 누군가 씻는 소리도 들린다.

엘리스인 것 같다.

루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들고 온 시트와 잠옷을 세탁 바구니 안에 쑤셔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손끝에, 이미 바구니 안에 있던 다른 옷이 닿았다.

“…….”

루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익숙한 실크 잠옷.

엘리스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잠옷 또한.

자신의 것과 똑같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

루나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그 잠옷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