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


찬합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약재가 많이 들어갔다더니, 먹는 것만으로도 몸에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이서령이 미리 준비해 온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벤치 앞에는 인공적인 시냇물이 흐른다. 티타임을 즐기기에도 딱 적합한 공간이었다.

설유월은 신기한 듯 시냇물에 손을 담그며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같이 물장구를 칠까 하다가, 순간 너무 아이를 대하듯이 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이서령은 그런 딸의 모습을 다정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의원님.”

“응.”

이서령은 내 눈을 바라봤다.

“유월이는 언제쯤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될까요?”

“음….”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본래 협회의 규정상 이방인은 정말, 최소 한 달 정도의 사회화 적응 기간을 갖는다. 대상의 경과나 추이를 보고 그 기간을 조정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 한 달 내외로 갖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설유월은 그 경우가 조금 다르다.

내가 직접 그녀의 사회화와 적응을 담당하고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자 완벽한 보호자인 이서령 또한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간은 훨씬 더 단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방인은 어딘가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다만, 서울 외부의 이방인이나. 그 외 많은 수의 이방인들을 전부 내가 담당할 수는 없기에 등급이 높은 이방인들만 우선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협회 또한 설유월의 처우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그 이후의 이방인을 대비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야 그런 바람에 대해 어울려줄 생각은 없지만…. 외부적인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설유월의 치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는 했다.

나는 말을 고르고 골라, 대답을 건넸다.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물장구를 치고 있는 설유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머지않아 유월 씨에 대한 공식적인 헌터 테스트도 진행될 겁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본인이 원하는 진로까지만 정해진다면… 그 이후는 일사천리가 될 것이라 보고는 있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소견이었다.

이서령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약간 복잡미묘했다.

이서령은 설유월의 뒷모습을 아련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게, 자신의 진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 또한 고민이 있습니다. 의원님.”

나는 고개를 돌려 이서령을 바라봤다. 그녀는 허락의 의미로 여겼는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유월이가 만약… 제 품, 그러니까 창천맹으로 돌아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요.”

나 또한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사항이다.

설유월은 이서령의 비호 아래 안전할 것이며. 이서령 또한 설유월을 보호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분명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저 아이가 제 품을 벗어나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이 어미의 마음이 또 너무 허전하고 쓸쓸해질 것 같습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게 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분명 저 아이는 받아들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정말 그게 옳은 길인지 저 또한 모르겠습니다. 또 어미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길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그런 그녀의 솔직한 고백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서령 또한 나의 내담자였으니까. 이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털어놓는 고민들은 뭐랄까…. 너무나도 흔한 종류의 고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대 가벼운 고민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식의 미래와 자신의 욕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세계의 모든 부모들이, 매일 밤 하는 고민. 그들의 무게는 감히 측정할 수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결코 잘못된 고민도 아니며.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할만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서령이 평범한 부모로서의 고민을 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니까.

바로 그때, 내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서령] [메인 스탠스] [자신의 딸인 설유월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원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생각 중입니다. 그 두 생각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적합 답변][만족 적합률 88%] [뭐, 대충, 사용자가 하려던 말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적합 답변] [만족 적합률 ???%] [이서령 사용자의 머리를 사용자의 무릎 위에 눕히십시오. 그리고 품으로 살짝 끌어안아 주세요. 머리를 토닥토닥 거리며 ‘고민이 많았구나’ 하면서, 지아비로서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 품에서 쉬거라.’ 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사용자를 갈망하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

‘야.’

[네?]

내가 두 번째 선택지를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르르륵, 다음 행동 지침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만족 적합률 88%의 답변은 대충 ‘네가 알아서 하라’라는 식이다.

이 정도면 그냥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나는 시스템을 떠보는 듯한 느낌으로 한번 물었다.

‘두 번째로 할까?’

[!!] [( ⸝⸝⸝˃֊˂)]

[저는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너는 집에 가서 보자.

[?!] [((;°Д°))]

이번에는 정말 이야기를 깊게 나눠야 할 것 같았다. 필요하다면 사랑의 매까지도.

[잘못해씁니다…] [ ( TдT) ]

나는 시스템을 저 멀리 치워버린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이서령을 향해, 한 명의 상담사로서 나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맹주님께서 하시는 그 고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 담백한 말에 이서령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약간의 평온을 되찾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자식의 미래와 자신의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겪는 가장 당연한 고통이니까요.”

나는 이서령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만약 맹주님께서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의 뜻을 강요했다면 그때는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맹주님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뇌하고 있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된 것 아닐까요?”

내 마지막 말에 이서령의 행동이 멈췄다.

“…….”

이서령의 붉은 입술이 적게 벌어졌다. 말라 있던 눈가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는 얼굴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서령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큰일 났다.

울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저 지지와 연대의 뜻을 보내려 한 것이었다.

아… 어쩌지.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녀는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추태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 일단 급한 대로.

나는 결국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 토닥토닥.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떨리는 등과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이서령이 내 품으로 살짝 파고들어 기대어 왔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 이마를 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흐윽… 감사합니다… 의원님….”

“아니야.”

나는 그녀를 위로하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우리의 이 기묘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설유월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 또한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내가 그녀의 어머니를 꼭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그럴 만도 했다.

– 슬금… 슬금슬금….

그런데 갑자기 설유월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와 아버지의 애정행각을 목격하고 자리를 피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런데 핵심은 내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리고 내 품에 기댄 이서령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턱으로 필사적으로 그녀의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거, 이거 휴지 좀!!’

휴지를 뽑아서 좀 주라는 이야기였다. 아마 운다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뒤늦게 내 눈빛을 읽은 설유월이 뒷걸음질을 멈추고 내게 다급하게 다가왔다.

늦게나마 알아채서 다행이었다.

설유월은 휴지를 한 움큼 뽑아내 손에 쥐여주었다.

직접 주지 왜….

나는 설유월에게 받은 휴지를 이서령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품에 기댄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

결국 나는 직접 그녀의 젖은 눈가를 조심스럽게 톡톡 두들겨주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마침내 진정이 된 이서령이 내게서 몸을 뗐다. 그녀의 얼굴은 복사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서령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제가 또 추태를 부리고 말….”

“아니,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나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말렸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어차피, 협회에서 허가된 외출 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저희도 슬슬 일어날까요?”

나는 두 사람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이서령은 붉어진 눈가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유월 또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찬합들을 함께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즐거웠던 캠핑의 뒤처리를 하는 가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