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9
금벽산은 한숨을 삼키며 복원록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이미 열 번도 넘게 확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경이로움은 여전했다.
‘측량할 필요도 없구나.’
노사나불의 진신(眞身) 앞에 섰기 때문이었다.
일류 상인은 어림짐작만으로 비단의 길이를 꿰뚫어 보고, 한 손으로 저울 없이 무게를 재는 법을 익혔다고 했다. 금벽산도 그러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렇기에 눈대중만으로도 원본과 복원록의 기록을 보고 대조할 수 있었다.
다시금 노사나불을 마주한 금벽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몇 번을 보아도 한 치의 틀림이 없었다.
제 몸 수십 배를 넘는 불상을, 그것도 만드는 도중에 이리도 정확하게 헤아렸다는 뜻이다.
천하를 꿰뚫어 본다는 천안(天眼) 정도는 가져야 비로소 믿을 만한 일이었다.
“……실로 신기로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고 했다. 둥그런 옥구슬에도 어딘가 흠이 숨어 있기에 그런 고사가 생겨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손바닥만 한 구슬도 그러할진대, 다섯 길은 족히 넘는 노사나불이 완벽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사,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측량하겠다고 나선 상단원들이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경외심? 아니, 이쯤 되니 그 너머의 불가해한 영역을 마주한 듯한 심정이었다.
서연은 노사나불을 원본 그대로 복원해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전한 그때의 모습으로 되돌린 것이다.
복원이었기에 그렇게 했다. 만약 창작이었다면 서연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작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노사나불 뒤편의 석굴에는 기하학적인 만다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노사나불의 머리 위에서부터 피어오른 만다라는, 석굴 전체를 토양 삼아 사방으로 그 뿌리를 뻗쳤다.
어두운 저녁임에도 그 무늬가 선명했다. 은하수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심정이었다.
“허, 허억.”
압도되어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이들이 속출했다. 만다라의 끝을 가늠하려 고개를 치켜들고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늬가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뭘 모르는 상단원이 보기에도 그러했다. 시야의 한 쪽을 가리고 보아도 여전히 대칭이 맞았다.
오른 눈을 가리면 다시 나머지 절반이 상하로 균형을 이루었고, 거기서 다시 반으로 나누어도 여전히 대칭을 이루었다.
그렇게 만다라의 끝 부분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노사나불이 세워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되돌아왔다.
“……진정 천상의 존재가 내려왔다 가셨구나.”
금벽산은 말 그대로 토해내듯 언어를 뱉어냈다.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바닥에도 만다라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장과 벽과 바닥에 그려진 만다라가 완벽한 원을 이루었다.
불도에서 으레 이야기하는 무한과 번뇌, 그리고 윤회.
그 모든 것들이 만다라에서 순환하다 노사나불이 있는 중심에서 아라한을 그려냈다.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확실한 건 불자들의 성역이 되겠다.”
월중천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청목족이었기에, 적잖은 왕조가 흥하고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내로라하는 유적들과 보물들을 직접 본 적이 적지 않았다. 개중에는 장인들의 혼이 담겼다는 물건들도 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기운을 뿜어내는 검도 있었다.
허나 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살아있다? 아니,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토기(土氣)와 금기(金氣)가 어우러진 자연지기가 만다라 틈새로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그 자체로 작은 지맥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도 명당이었다. 거기에 신기 어린 손길이 닿으니, 작은 지맥 하나가 피어난 것이다.
‘산정(山精)들이 보면 환장을 하겠군.’
청목족이 뭘 모르는 이들에게 이족(耳族)이라 불리는 것처럼, 산정들도 뭘 모르는 이들에게 둔족(遁族)이라 불렸다. 둔하게 생기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그 종족 자체가 장인이라 웬만한 귀물도 돌 보듯 하는 이들인데,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예로부터 산정들은 지맥에 환장했으니 말이다.
질 좋은 광물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그러했다.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 사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월중천은 다시금 책상에 놓여있는 서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연천공이라 했다.
사락.
부윤은 눈을 부릅뜨고 그런 월중천을 쳐다보았다. 본래 아무에게나 보여줘서는 안 되는 귀물이었으나, 상대가 태황조 시절부터 오랜 세월 일해 온 충신이었기에 그리한 것이다.
‘결코 세간에 퍼져서는 아니 되는 물건이다.’
뱁새가 황새 쫓다 다리 찢어진다고 했다. 이 또한 그러했다. 뭣 모르는 자들이 함부로 따라 하다가는 일생을 속절없이 허비하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마땅히 북경에 진상해야 한다.’
낙양에는 노사나불이 있고, 소림도 삼신세불을 품었으니, 북경에도 무엇 하나 올려보내야 이치에 맞았다. 오히려 그리해야 서연에게 쏟아질 괜한 질시의 화살을 막을 수 있었다.
눈썰미 없는 자들은 시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스스로 주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연 또한 그것을 노리고 자신에게 이 귀물을 내어주었으리라.
무력으로 경고하는 것보다 몇 곱절은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적어도 부윤은 그리 생각했다.
이윽고 월중천은 비연천공을 완독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청목족 특유의 고고함마저 내려놓고 감탄하던 그는 어느새 완연한 탄식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아……”
월중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녕 인간이 맞으셨나?”
“셋째에게 듣기로,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이라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금벽산은 월중천에게 존대했다. 그의 증조부 때부터 연을 맺어온 어른이었기 때문이었다.
월중천은 몇 번이고 거듭하여 비연천공을 읽어 내려갔다.
“옛 어르신들과 피가 섞인 분이실 가능성도 있겠다. 인간의 세월로 쌓을 수 있는 무학이 아니야. 하늘이 내린 천고의 무재라 해도 불가능해. 불가능하다…….”
월중천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답지 않게 힘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한참 동안 입만 달싹거렸다.
금벽산은 그런 월중천을 바라보다가, 옆에 서 있는 부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윤은 다른 의미로 심란한 얼굴이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부윤이 말했다.
“……노사나불을 민간에 공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라고 자네에게 맡기고 가셨겠지.”
부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종교든 그 세력을 불리면 북경에서는 으레 경계하기 마련이었다. 어느 국가나 다를 바 없었다. 황실에서 도문과 불도를 대우하는 것은 그들이 백성을 외압으로부터 보호하고 분란을 막아서이지, 진정으로 그들을 섬겨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출입을 막으면?
서연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은 답지 않게 연거푸 한숨만을 내쉬었다.
*****
낙양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인 서연은 화련과 함께 유유히 이동했다. 다행히 이제는 맨발로 걸어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낙양 부윤이 역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본래 인사권은 황제의 고유한 권한이었으나, 명예직 정도는 부윤도 내릴 수 있었다. 거기에 역참 통행첩까지 얹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
말에 안장까지 채우고, 거의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이동했음에도 무언가 불편했다. 뒤에 화련이 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승차감이 백호와 다르다고 할까. 말을 탈 때면 항상 이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낮에 그만한 범을 타고 다닌다면 당장 관아에서 난리가 날 텐데.
도대체 무엇을 먹고 다니는지 쑥쑥 자라서, 이제는 대로를 혼자서 꽉 채울 수준이니 더더욱 그리할 수 없었다.
‘섬서를 들렀다가 가야겠다.’
애초에 사천을 가려면 섬서를 거쳐야 했다. 서연은 이번 기회에 아예 강호를 주유할 생각이었다. 섬서를 거쳐서 사천으로, 그 다음에 운남까지 내려갔다가, 중원 전체를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지역마다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다르니, 그때마다 조각을 해보고 비연천공 또한 완성할 계획이었다.
그뿐이랴, 조각할 때의 움직임을 담을 서적도 따로 완성해야 했으니, 여행 중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따로 돈을 벌 필요는 없을 듯했다. 금벽산과 부윤이 말 그대로 온갖 것들을 쥐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장 도감(都監)만 하여도 이름은 명예직이었지만, 낙양 부윤이 보증한 장인이라 어디 가서든 대접받기에는 충분했다.
적당한 관아에 가서 신분패만 내밀면 부윤의 이름값에 벌벌 떨며 먹을 것을 내놓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좋다 좋아.’
서연은 노사나불을 복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관대작들은 하나 같이 뱃살이 그득하고 농땡이만 친다는 편견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러한 편견도 싹 사라졌다.
‘관도 정파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 많다.’
이쯤 되니 아예 무협지에서 유명했던 문파들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곧 서연은 일전에 객잔에서 만났던 거지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섬서에서 화산파와 종남파가 한판 붙는다고 했었지.’
실제로 싸운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찌 정파, 그것도 천하에 이름을 날린 도문들이 사사로운 이유로 싸우겠는가.
각자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내세워 비무대회를 연다는 뜻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듯싶었다.
그뿐이랴, 섬서에는 낙양보다 큰 도시인 장안(長安)이 있다. 중원에서 둘째로 큰 도시답게 온갖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서역으로 향하는 무역로의 시작점도 이곳에 위치한 탓에, 색목인들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고 했다.
동방에서만 나는 재료가 있듯, 서방에서만 나는 재료도 있는 법이다. 청금석과 홍옥, 벽옥, 산호나 유리 같은 진귀한 재료들이 그러했다.
서연은 열흘 동안 말을 달려 섬서에 도착했다. 그동안 화련에게 비연천공을 보여주진 않았다. 완성되면 보여 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인파로 가득한 도심에서 말을 타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가까운 역참에 말을 맡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거리에 당도했다. 아직 장안의 초입인데도 그러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칼을 찬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이한 점은 도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화산파와 종남파가 세운 여러 분타(分舵)의 영향이리라.
그뿐이랴. 호북의 무당산이 멀지 않다. 무당파의 분타도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 세웠다면 영역을 침범했다 욕을 들었겠지만, 장안이 워낙 큰 도시인 탓에 그럴 수도 없는 듯했다.
‘과연, 사람이 많긴 하구나.’
그때였다. 옆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오는 남녀 도사들이 있었다.
그 수가 다섯이었는데, 인파를 뚫고 오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주변 행인들이 눈치껏 길을 비켜섰기 때문이다.
무복에 새겨진 매화 자수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그것을 보고 화산파의 도인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중 유독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녀가 눈에 띄었는데, 지학을 막 넘긴 강호 초출의 신진으로 보였다.
곧 소녀의 얼굴을 본 행인들이 외쳤다.
“소검후(小劍后)다!”
어린 소녀가 벌써부터 별호를 가졌다는 사실이 실로 의외였다. 허나 순전히 외양 때문에 별호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기에 서연은 그러려니 했다. 화산에 검후가 있다는 사실은 서연도 익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검후, 그럴듯하네.’
물론 단순히 작다고 하여 소검후라 불리지는 않았을 터. 당연히 그 이름에 걸맞은 무공 실력이 뒷받침되었으리라.
허나 그녀의 작은 체격이 별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그때였다. 소검후의 눈초리가 이쪽을 향하더니, 다짜고짜로 달려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걸음을 몇 번 옮기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서연 앞에 도달해 있었다.
“검후의 진전을 이었다더니!”
“과연 신묘한 경신법이로다!”
소검후는 주변 행인들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서연과 옆에 손을 잡고 서 있는 화련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화련이 있는 방향으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대뜸 한 손을 내밀어 화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팍!
서연이 무의식중에 소검후의 손목을 잡아채서 그대로 옆으로 흘려보내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
순간 사방에서 침묵이 흘렀다. 손목을 잡힌 소검후도, 서연도 당황하여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뒤에 서 있던 화산파 도인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내가 황급히 끼어들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죄송합니다. 대사저(大師姐)께서 가끔 이리 엉뚱하게 구실 때가 있습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서연은 눈을 껌뻑거렸다. 말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사저라니? 그것은 배분이 가장 높은 여제자에게나 붙이는 말이 아닌가?
서연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나이가 어찌 되시는지요?”
“……”
소검후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귓볼이 벌게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