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


소림에는 매일같이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복을 빌거나 시주를 올리기 위함이다.

허나 요 근래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다. 소림 방장께서 폐관수련에 드셨음에도 방문객의 수가 예년보다 이할 내지 삼할은 족히 늘었는데도 말이다.

방문객들의 얼굴에 만족의 기색이 아닌, 묘한 아쉬움만 서려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음, 역시 그 신물(?)에는 미치지 못하는구나.”

“기대가 너무나 컸다.”

“사람의 솜씨로는 정녕 신선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인가.”

소림의 자랑이자 대웅보전의 주존불을 친견한 방문객들마다 하나같이 이런 탄식을 내뱉고 사라지니, 승려들은 당최 영문을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참다못한 몇몇 승려들이 조심스레 연유를 물으니,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낙양에서 열린 각예대회에서 선녀가 삼신세불을 직접 빚어냈는데, 그 신비로운 불상을 보고 난 후로는 소림의 주존불이 한낱 평범한 조각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소림의 십팔나한과 사대금강을 제외하고는, 여타 승려들은 방장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산문을 벗어날 수 없는 법.

고로 소문의 진위를 직접 확인할 길이 없으니, 며칠째 방문객들의 탄식에 시달리며 번뇌에 휩싸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두 명이라면 그러려니 넘겼겠으나, 찾아오는 이들마다 한결같이 선녀니, 신선이니 지껄여대니, 무시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오늘 또한 그러했다. 해가 미처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임에도 산문 밖이 소란스러운 기척으로 가득했다.

산문을 지키던 나한들이 눈을 들어 앞을 주시하니, 무명천을 걸친 무인들이 웬 마차 한 대를 조심스레 호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높은 신분의 인물들이 제 신분을 감추고자 호위들에게 평범한 옷을 입히는 것은 강호에서 나름 흔한 일이었기에, 나한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허나, 그 무리 맨 앞에 선 무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나한들은 감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금룡상단주 금벽산의 동생, 금벽운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동생이지, 금룡표국을 운용하는 실질적인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금룡표국주께선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형님이 긴히 부탁하여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 지급이라더군.”

매우 급한 일이라는 뜻이다.

표국에게 급한 일이란 한가지뿐이니, 바로 대단한 표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었다.

금룡표국주가 직접 나설 정도라면 보통 표물은 아닐 터. 어쩌면 물건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나한들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것을 읽었는지, 금벽운이 말했다.

“형님이 각예대회(?)를 열었다는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그때 만장일치로 수석을 차지한 걸작이 마차 안에 들어 있소이다.”

나한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며칠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각예대회(?) 이야기에 이미 지긋지긋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곳까지 와서 자랑이라도 할 셈인가?’

금룡표국, 아니. 그 뒤에 있을 금룡상단의 파렴치한 행각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려던 찰나, 금벽운이 다급히 이어 말했다.

“본디 작품은 제작자에게 귀속되는 법이나, 그 분께서 소림에 전해드리면 좋겠다 말씀하시어 이리 찾아오게 되었소이다. 내 확실치는 않으나, 소림 방장대사와 깊은 연이 있으신 분 같소.”

“쉬이 넘기기 힘든 말을 하십니다.”

금벽운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림의 나한당주였다.

“각예대회(?)에서 있었던 일은 익히 들었습니다. 약관이 겨우 넘었을 법한 여인이 삼신삼세불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말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겠으나, 그만한 연배에 방장님과 연이 있다는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오랜 기간 교류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준이 되어야 깊은 연이라 부를 만 했다. 그리고 방장대사와 그만한 연을 쌓으려면, 못해도 고희는 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그 여인은 육신의 세월을 되돌리는 노화순청은 물론이고, 인체의 시간을 거스르는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데, 그만한 여고수가 존재했다면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도 진작 알려졌을 것이다.

금벽운은 답답함을 느꼈다. 허나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서연의 기행을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그도 같은 생각을 했을테니 말이다.

“일단 들어오시지요.”

나한당주는 표사들을 이끌고 내부로 향했다. 그때, 듬직한 체구의 승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한당주에게 정중히 반장하고는, 금벽운과 표사들에게도 차례로 반장하며 예를 표했다. 표사 하나가 놀란 얼굴로 나지막이 외쳤다.

“방장제자 무율!”

“그렇게 불리기도 합니다.”

무율은 곧 금벽운에게 다가가 말했다.

“방장께서 참으로 좋은 선물을 받았다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금벽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 말은, 드디어 폐관을 깨고 나오셨다는 뜻이오?”

허나 무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명을 들으니, 이따금 소림의 각주들과 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깊은 침음을 삼키던 금벽운은 표사들에게 손짓했다. 곧 마차 문이 열리며, 고운 비단에 감싸인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비단을 치우겠소이다.”

표물을 제대로 옮겼다는 확인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곧 표사들이 조심스럽게 비단을 걷어냈다. 곧 모습을 드러낸 삼신삼세불에, 금벽운은 내심 또 감탄했다.

‘볼 때마다 감탄스럽구나.’

가끔씩 돈으로 그 가치를 감히 매길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 금벽운이 생각하기에, 지금 눈앞의 불상이 그러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나한당주와 무율이 멍청한 표정으로 삼신삼세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그 시간이 무려 일다경에 달했다.

“……괜찮으시오?”

참다 못한 금벽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서야 두 승려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무율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혹시, 태실산에 기거하는 분이십니까?”

삼신삼세불을 만든 자의 거처를 묻는 것이었다. 금벽운은 이를 알려주어도 될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무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아직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이리 깊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무율은 망설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한당주는 제 무지함을 한탄하듯, 그러면서도 더없이 후련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금룡표국주께서 하셨던 말씀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방장대사와 깊은 연을 맺은 사람이 맞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만한 귀물(?)을 선뜻 내어주겠는가. 어쩌면 방장대사보다 배분이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한당주는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깨달음과, 그 즐거움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말했다.

“소림이 잘 받았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금벽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듣기를, 둘 모두 깊은 깨달음을 얻어 폐관에 들었다고 했다.

*****

서연은 삼신삼세불을 조각한 후에도 계속 금진송의 집에 머물렀다. 금룡상단의 셋째 금진송 말이다. 나이 지긋한 금룡상단주와 계속 같은 자리에 있던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못해도 할아버지 뻘은 되는 이가 이쪽을 상전 모시듯 하니,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 당과(?)를 가져왔단다.”

금진송은 때때로 달콤한 당과(?)를 가져와 화련에게 건넸다. 화련은 평소 고양이처럼 새침하게 굴다가도, 그럴 때면 당과(?)를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시녀 교교는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보며 내심 한탄했다. 스승인 서연의 호감을 얻고자 제자인 화련부터 구슬리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허나 쑥맥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끔찍한 나이차로 도련님이 괜히 상처받을까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서연이 직접 문 밖으로 나가 당과(?)를 사올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택 문 앞에 인파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제 아이를 한 번만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화수도 떠놓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녀님, 선녀님!”

금벽산은 서연의 거처를 철저히 감췄고, 각예대회(?)에 참가했을 때 기록했던 신상정보 또한 즉시 폐기했다. 허나, 서연을 각예대회(?)에서 안전히 빼내고자 금룡상단의 마차에 태웠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 민초들이 금룡상단의 저택에 물밀듯이 몰려들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복을 빌어달라는 이는 예사요, 서연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지라 도무지 문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노사나불(?)까지 고치러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했다.

아무리 관리들이 용문석굴(?)의 출입을 틀어막고 있다지만, 낙양에 사는 사람만 수백만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뚫고 용문석굴(?)까지 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불가능하진 않겠으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차를 타야 했고, 행인들의 시선을 속일 가짜 마차도 여러 대 구해야 했으며, 동시에 티 나지 않게 은밀히 재료를 실어 나를 사람들도 물색해야 했다. 그 모든 일에 관아(?)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만 가능할 터였다.

그렇기에 서연은 못해도 몇 개월은 금진송의 별장에서 머물러야겠다고 짐작했다.

허나 서연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낙양 부윤의 일처리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는 것이다.

부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이 머무는 곳으로 직접 찾아왔다.

“황상을 모시는 관리인 탓에 섣불리 경어를 쓸 수 없는 것을 이해하시오.”

“지금처럼 편히 대해주시는게 제게도 편합니다.”

“음.”

서연의 말에 부윤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겸손함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었다.

낙양 부윤이 어떤 사람인가. 오도(?)에서도 손꼽히는 낙양의 부윤은 지방관 중에서도 최고위직에 가까웠다. 어떤 면에서는 하남성의 총독보다도 권한이 많았으니, 그 힘을 짐작할 수 있겠다.

부윤은 서연을 잠시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노사나불(?)을 수리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들었소.”

“맞습니다.”

“정녕 다른 것을 바라진 않소?”

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이 부족한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새로운 조각 재료를 구하고 싶은 것 정도였는데, 곧 받게 될 각예대회(?) 상금을 대신하여 재료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충분합니다.”

서연의 눈빛과 부윤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렇게 세 호흡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때, 부윤은 서연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어!”

부윤은 서연이 삼신삼세불을 만드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끝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믿음직한 친우와 수하들에게서 소문을 전해 듣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간단한 문답을 통해 완전히 결론을 굳혔다.

‘진정으로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을 사람이로다.’

어느 정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낸 모습일 것이라 단정하여, 금은보화를 비롯한 온갖 진귀한 재료들을 예비해 왔건만.

서연의 티 없는 진심 앞에 부윤은 내심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음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본관이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소. 재료는 이미 전부 옮겨두었고, 참장(?)과 이야기도 마무리했소. 당시 기록이 담긴 문건들도 준비되어 있으니, 준비되면 언제든 출발하면 되오.”

이미 금룡상단의 것으로 위장한 마차 수십 대를 낙양 곳곳으로 보내놓았다. 서연과 비슷한 복장으로 위장시킨 여인들을 섬서를 비롯한 온갖 곳으로 보내 시선도 분산시켰다.

그뿐이랴. 참장의 병사들이 민초로 변장하여 용문석굴(?) 주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으니, 적어도 달포 간은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금룡상단 문 바깥으로 나서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당장 지금도 문 앞에 수많은 민초들이 웅성이고 있었으니까.

허나 부윤은 그런 것조차 당연히 염두에 두었다.

“금룡상단의 모든 별장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비밀통로가 있소.”

다른 사람도 아닌 금룡상단주 본인에게 직접 전해들은 사실이었다.

부윤은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서재 한편에 빼곡히 쌓인 책들을 더듬었다. 이내 어느 책 한 권을 잡아당기자, 기관이 작동되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천장 중간중간에는 값비싼 야명주(?)가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못해도 백 장은 족히 넘어 보였다.

“저 끝에 마차가 있소이다.”

서연은 부윤과 함께 길을 나섰다.

*

비밀리에 준비된 마차를 타고 용문석굴(?) 입구에 당도했을 때, 서연은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용문석굴(?)을 수비하던 병사들의 얼굴에 묘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 닦인 병장기에서부터 이들이 정예병임을 알 수 있었으나, 그들의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곧 무관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그는 서연과 부윤을 번갈아 살피더니,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장 들어가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부윤이 미간을 좁혔다. 못해도 천 명은 족히 되는 병사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텐데, 도대체 어찌하여 들어가지 못한단 말인가.

무림인(?)? 어불성설이다. 하남, 그것도 낙양에서 어떤 정신 나간 무림인(?)이 감히 관부(?)의 통제를 거스르겠는가.

남은 가능성은 오직 하나. 부윤보다 높은 자가 방문을 금한 것뿐이었다.

“혹 군왕(?)께서 방문하시기라도 했는가?”

무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노사나불(?) 옆에 산군(?)이 나타났습니다.”

“……산군(?)이라니?”

뜬금없는 소리에 부윤은 허탈한 숨을 토해냈다. 낙양을 지키는 정예병들이 고작 짐승 따위에 겁을 먹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무관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크기가 세 장도 넘게 커졌다가, 그림자 속에 숨어 사라졌다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전혀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탓에 도저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만 들으면 병사들이 단체로 환각(?)에 걸리기라도 한 듯했다.

그때 서연이 조용히 물었다.

“혹시 백호(?)였습니까?”

그는 반말을 하려다, 서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존대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눈은 파란색이었고요?”

“그것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곧 서연이 안도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잘 아는 범(?) 같은데, 들어가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잘 아는 범(?)이라는게 성립이 가능한 문장이었던가.

“…….”

순간 분위기가 묘해졌으나, 서연만 깨닫지 못했다.